'신뢰 경영'으로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유코비나 김동호 사장 인터뷰 정재훈 기자l승인2016.04.17l수정2016.04.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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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바탕으로 직원들이 책임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저절로 됩니다."

김동호 유코비나 사장은 문화와 말이 다른 직원들을 이끄는 데에 있어서 정보 공유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마음은 직원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직원들은 회사의 외국인 리더를 관리자나 투자자가 아닌 선배로 여기고 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직원들에 대해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현지 직원들과 융화를 이뤄내며 회사의 위기를 극복해 낸 김동호 사장의 스토리는 비슷한 환경의 기업인들에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이야기를 그에게서 직접 들어봤다.                                   

▲ 먼저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유코비나는 여성의류 생산 업체입니다. 공장은 2003년도에 세웠고, 저는 한국에 있다가 2006년에 한국에서 일 그만두고 베트남에 왔습니다. 5년 전부터는 주문 트렌드가 니트로 몰려서 주력 생산품을 니트로 바꿨습니다. 주로 미주 쪽 바이어들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선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 코오롱에 있었어요. 부장급 업무를 맡고 있다가 사업 파트가 없어지면서 공장을 인수했습니다. 하청공장이었어요.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땐 젊었으니까,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올인'했습니다.

▲ 지금은 베트남에 혼자 나와계신 건가요? 남자들은 베트남에서 유혹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던데요.

- 아니오. 가족들도 함께 있습니다. 저에 대한 유혹 보다도, 제 집사람에게 다른 유혹이 있을까봐 오히려 제가 불안해합니다. (웃음) 사실 저희 부부를 불협화음이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미녀와 야수'라고.

▲ 아내분은 베트남 생활에 만족하시는지.

- 베트남 생활 자체는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직 있다고 할까요. 사실 제가 그동안 사업에 부침이 좀 있었거든요. 고생을 시켰죠. 그것 때문에 매일 기도실에 가고…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위기에서 기회로 이끌어 준 '인복'(人福)

▲ 베트남에서의 사업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조금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제가 5년 전에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었습니다. 공장을 하나 더 추가했다가 힘들어졌죠. 그 공장 넘겨주고… 나중에 자금이 달려서 처가에 손 벌리고 그러다 보니 그때 고생이 컸어요. 있는 가산 다 털고, 처가에 손도 벌리고 했는데, 그런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 한번 사업이 힘들어지면 처음 시작하기보다 더 힘들다고들 하던데, 괜찮으셨습니까.

- 직원들이 저를 많이 이해해 줬습니다. 그 덕분에 일이 잘 됐던 거죠. 직원들이 더 열심히 해줘서 손익분기점을 맞췄고, 큰 무리 없이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좋은 직원들이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돈복은 없어도 인복은 많다'고 하더군요.

▲ 직원들과 관계가 좋으셨기 때문이겠지요? 직원들과 소통은 어떤 점을 중심으로 하고 계십니까.

- 관리자라기보다 선배로 여겨진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부분일 겁니다. 제가 1989년에 코오롱에서 시작해 의류 바이어들과 계속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에, 이 일에 있어서 경험이 더 많으니까 그걸 가르쳐 줬습니다. 베트남은 시작한 지 10년 됐고, 저는 20여년을 했으니까 알려줄 것이 많지요. 바이어 특징이 어떤지, 최상의 퀄리티 전달이 어떤 건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떤지…. 지난 7년 정도 그렇게 코칭을 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저를 단순히 관리자나 투자자 정도로 생각했던 직원들도 이제는 선배로서 따르고 있습니다.

▲ 동료이자 선배로서 함께한다는 마음을 주셨군요.

-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준 거죠.

▲ 하지만 회사 직원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해결하실 수 있는 건가요?

- 기본적으로 업무 집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고 내용을 모두 공유하게끔 만들었어요. 회사의 시스템을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는 거죠. 이걸 하는데 7년 걸렸어요. 현장 관리자들에게 제가 받은 오더 상황이나 이런 걸 정리해 알려줘요.

▲ 모든 정보를 노출하면, 불만이 나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수익에 따른 임금 조정을 요구한다든지.

- 다행히 여기서 일하는 모든 관리자들은 저와 오래 일을 해 온 친구들이에요. 제가 어려움을 겪은 걸 알고, 얼마나 돈을 빌렸는지도 압니다.

자금 상황도 공유를 해요. 이런 게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멤버들은 이걸 다 알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에 소속감을 더 느낍니다. 중요한 건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이라고 생각합니다.

▲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공개를 안 하고 '남는 게 없다'고 숨기지 않습니까.

- 사실은 제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안돼요. 그러니 차라리 보여주고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죠.

직원들과 소통하며 믿어주는 '신뢰 경영'

▲ 많은 상황들을 공유하고 대화하시는 것은 좋아 보입니다만, 그런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지는 않나요?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 한국 기업가들은 이곳 직원들과 생각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법이 틀려서 문제가 많아요. 저는 제 조건을 매니저들에게 먼저 얘기를 하고, 중간 매니저들과 직원들이 또 얘기를 해서 결정해서 전달해 준 조건을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입장에서 어떤지 다시 설명해 주면서 그 중간에서 합의점을 찾습니다.

▲ 경영의 기본 원칙이 있다면.

- 저는 공개, 개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합의를 보는 거죠. 직원들 스스로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됩니다.

▲ 생산공장에서 중요한 건 아무래도 생산성 아니겠습니까. 베트남은 생산성이 좀 떨어진다는 편견도 있습니다만.

- 저희는 각 공정을 기록하고 매뉴얼화합니다. 작업이 들어오면 어느 기계에서 몇 시간 걸리는지 다 체크가 되어 있어요. 한국 공장들은 대체로 이런 데이터가 약해요. 저는 이곳 친구들에게 매뉴얼을 만들면서 자체적으로 공정이 몇 시간 걸리는지 확인하도록 작업을 시켰습니다. 손작업부터 기계작업, 준비작업까지 모두.

▲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아이디어는 제가 냈습니다. 제가 여기서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 일을 10여년 해 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왔죠. 그걸 계속 코칭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이걸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이제 6,7년 하면서 조금씩 몸으로 익혀가고 있습니다.

▲ 좋은 매뉴얼을 다른 한국교민들에게도 공개를 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상생하는 의미로.

- 몇 번 줬습니다. 그걸 각자가 이해하고 상황에 맞는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그건 제몫이 아니니까…. 이걸 하려면 '참을 인'(忍)을 몇 번이고 써야 해요. 저도 지금까지 그렇습니다. 재단 스케줄, 생산 스케줄, 검사 스케줄 등이 모두 따로따로 되어 있거든요. 이걸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모든 회사가 나름대로 시스템은 가지고 있어요.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보이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 공정 기록은 어떻게 하며, 또 어떻게 사용됩니까.

- 사실 이건 제가 하지 않습니다. 현장 관리자들이 하죠. 또 생산 기획하는 MD들이 만드는 자료는 따로 있습니다.

이것들을 가지고 같이 회의를 합니다. 이걸 통해서 계획을 수립하는 겁니다. 서로 비교하는 시스템만 갖추면 되는데, 그 부분이 사실은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단순한 차트 만드는데도, 몇 년 걸렸어요. 이걸 제가 만들면 못해요. 직원들 스스로가 만들어야지.

▲ 말씀하신 내용들은 사실 베트남 직원들과의 융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들입니다.

- 현지화는 현지 직원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습득해 주느냐가 관건입니다.

저희는 공장장과 MD까지 다 현지화 했어요. 직원들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이해를 하고 파트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려 줘야죠. 계속 훈련시키고. 저는 계속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끼리 망하진 않겠다. 얼마나 오래 갈래" "나 빌린 돈 너희가 언제 해 줄거냐" "이 공장을 너희 2세들에게 넘겨줄 수 있을 때까지 같이 가자"

▲ 책임자들도 이게 내 사업이라 생각하겠군요. 신바람도 나겠고.

- 제가 돈을 많이 못 줘서 신바람은 안 날 것 같아요. 하하.

"우리가 베트남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민합니다"

▲ 베트남에서 인건비가 가파르게 올라서 힘들어지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어떠신가요.

- 저희도 똑같죠. 2006년도에 왔는데, 그때 이후 임금이 300~400%까지 올랐거든요. 2006년에 비해 3.5배에서 4배가 오른 겁니다. 반면 공임은 1.5배밖에 안 올랐어요.

워낙 임금 상승률이 높다 보니까 생산성 대비 임금 효율성에 있어서 인도네시아에 역전이 됐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로 투자가 많이 몰렸는데, 올해 거기서 40~60% 임금 인상이 됐거든요. 그래서 그 물량이 다시 베트남으로 넘어 오는 분위기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외 투자를 할 때 그쪽의 경제 정책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임금 대비 생산성이라든지 수출입 통관이라든지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야지요.

▲ 앞으로 계속 베트남을 고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 항상 두 가지를 모두 생각하고 있죠. 스터디는 계속 하고 있고. 아직까지 5,6년은 갈 수 있다고 보는는데, 조금 더 길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지금 페이스라면 경쟁력을 상실할 것 같습니다.

▲ 같은 섬유산업 분야의 한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워낙 한국인들이 도전정신이 강하잖아요. 그 정신을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인들의 도전정신은 인정해 줍니다. 이곳의 한국사람들 중에는 태도가 나쁘고 잘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도전정신 같은 부분은 존경하기도 합니다.

▲ 지금까지 베트남에서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 처음에 사업적인 위험 부담도 있었고, 중간에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제금은 개인적인 생각으론 '하나님이 다른 미션을 주고 보냈구나' 싶습니다.

▲ 고용창출이란 자체가 사회에선 상당한 역할 아니겠습니까.

- 저도 그런 부분에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요. 사회적 가치가 어떤 무엇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을 하고 있고, 직원들도 동의합니다. 우리 공장이 베트남 사회에 어떻게 기여를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꿈이 있다면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 직원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 그세 제가 여기 온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주일에 교회 나가면 내가 용돈 줄게' 그렇게 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여유가 없어서 돈은 주지 않습니다만. 주일에 교회로 이끌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재훈 기자  jtk33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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